추천도서

<강원외고> 빵을 포기한 인간이란

채식주의자(한강)을 읽고

참고자료

<빵을 포기한 인간이란>

-채식주의자(한강)를 읽고-

 

‘노루탕’. 어릴 적 나는 노루탕을 참 좋아했었다. 그 동네에선 깨나 유명했던 보신탕집 주인인 이모할머니 댁에 가면 항상 노루탕을 끓여 주셨다. 맘 속 깊은 곳에서는 노루를 어떻게 잡았는지 의심은 갔지만 어쩔 수 없이 먹었다. 어느 날은 이모할머니 댁에 갔다 오던 길에 노루를 차로 들이 받아 큰 사고가 났고 어렸던 나는 그 노루의 새끼를 먹었기에 벌 받은 것이라고 생각이 들어 한 동안 고기를 먹지 않았다. 먹으려고만 하면 자꾸 죽은 노루의 시체가 나를 데리고 어디론가 가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사자가 토끼를 잡아먹은 후에 그 행위를 반성하지는 않는다. 자연에서 그 행위는 지극히 자연스럽다. 하지만 사람은 자신의 도덕적 의지로 행동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 예술을 위해 빵을 포기할 수 있고 자신의 명분을 위해서 기꺼이 육식을 포기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채식주의자는 사람의 의지가 얼마나 극한까지 갈 수 있는지 깨닫게 해준 소설이다.

 

잠재되어있던 트라우마가 깨어난 뒤 육식을 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영혜를 사회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그저 정신병자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행위를 작가는 여러 시선으로 나누어 ‘죄를 속죄하는 영혜’로써도 묘사했다. ‘인간이 아니라고 해서, 그것을 섭취하기 위해서 다른 생명에게 고통을 가해도 되는가? 그들도 나름의 삶이 있지는 않을까?’ 아마 우리도 이런 것을 생각하며 산다면 선뜻 고기반찬에 손을 댈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그녀가 자연의 근본과도 같은 나무가 되려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영혜의 형부 또한 비슷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는 영혜의 몽고반점을 보고는 영혜의 순수함, 더럽혀지지 않은 아이 같은 모습에 새로운 영감을 느낀 후 그것을 예술로 승화시켜 표현하기에 이른다. 육식을 거부하고 인간이라는 존재에 회의감을 느껴 자연의 근본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영혜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소원을 예술로써 실현시켜주려는 형부, 그리고 그것을 꽃의 암술과 수술의 결합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구현해냈다는 것은 대단히 예술적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를 과연 예술로 받아들여야 할까? 그 또한 그 작품을 실제로 표현해도 되는가를 계속해서 고민한다.

 

 도덕적으로 자각을 하고는 있었으나 그에게는 예술을 추구하는 마음이 더 컸다. 그들의 행위는 패륜이었고 공동체적 책임을 간과했다. 그러나 그는 사회적 처벌을 감수하면서까지 예술이라는 렌즈를 통해 사람의 근원에 다가가기 위한 그 껍질 한 겹 벗기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럼으로써 인간과 가장 동떨어졌지만 또한 인간과 가장 가까운 작품을 탄생시킨다.

 

  이 책은 사람의 의지가 어디까지 확고할 수 있는지, 그리고 진정한 예술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것을 사회와 인간 내면의 시선으로 나누어 잘 표현한 책이다. 책에서는 인물들의 행위에 대한 시선이 여러 인물을 통해 그려지는데 누가 보는가에 따라 그 행위는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결국 내가 느꼈던 질문들의 답은 영영 결론이 나오지 못할 것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하는 생각은 결국 보는 시선에 따라 천차만별인 법이고 시대가 지남에 따라 우리의 기준도 계속 바뀔 것이다. 하지만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면 사람은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

채식주의자’는 우리가 한 행위를 반성하고 앞으로 할 일이 옳은 일인지 끊임없이 돌이켜 봄으로써 진정한 도덕적 존재로써의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서로 다른 시선을 통하여 깨닫게 해준 책이었다.

조수아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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